유상철은 췌장암으로 2012년 6월 7일에 세상을 떠났다. 2002년 월드컵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유상철을 레전드로 기억하겠으나 2002년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은 그가 왜 레전드로 불리는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가 왜 레전드, 전설로 불리며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슬퍼하는지 알아보겠다.
1. 대한민국에서 다시 보기 힘든 멀티플레이어
그는 한국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만능형 멀티 플레이어이다. 프로 데뷔는 윙백, 대표팀 데뷔는 스위퍼로 했다. 최전방 공격수부터 공격형 미드필더, 수비형 미드필더, 최후방 수비수까지 모두 가능한 만능형 멀티플레이어다. K리그에서는 수비수, 미드필더, 공격수로 모두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뽑혔고 특히 공격수로 뛰면서 득점왕까지 했다. 이 정도 수준의 멀티플레이어는 한국 축구 역사상 전무후무하며 해외 선수로 범위를 확대한다 해도 네덜란드의 루드 굴리트와 필립 코퀴 정도 말고는 그 사례를 찾기가 힘든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이다.
2. 2002년 월드컵에서의 활약
대한민국의 월드컵에서 첫승을 거둔 2002년 한일월드컵 첫 경기 폴란드전에서 승리를 결정짓는 두 번째 골을 넣었다. 이 골로 대한민국은 월드컵 첫승을 거둔다.
이후 한국은 16강에 진출하고 8강을 관문에서 이탈리아를 만난다.
16강전은 이탈리아가 첫 골을 넣고 한국이 끌려가게 된다. 이때 한국의 감독이던 히딩크 감독은 도박에 가까운 전술을 펼친다. 수비수 김태영과 홍명보, 수비형 미드필더 김남일을 빼고 공격수 황선홍과 이천수, 차두리를 교체 투입한 것이다. 즉, 수비수 셋을 빼고 공격수 셋을 투입한 총공격 폭격 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위 사진의 왼쪽이 선발 때의 포지션이고 오른쪽이 후반 교체 후 포지션이다. 유상철의 위치를 보면 전반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지만 후반 교체 이후로는 수비수로 내려온 걸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엄청난 멀티플레이적 능력이 아니었으면 어려웠을 전술이다.
이 도박적인 전술 이후 결과는 알테니..
이런 활약으로 2002년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에 한국 선수로는 홍명보와 함께 유이하게 올랐다.
3. 어떤 구설수도 없었다.
유명인이라면 한번 있을 법한 그 어떤 구설수도 없었다. 음주운전도 없고, 폭행사건도 없고, 성추행도 없고, 정치적으로 문제도 없었다. 그야말로 클린 그 자체였다.
4. FC 바르셀로나 이적설
그 유명한 바르샤에서 유상철 영입을 검토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냥 소문일 수도 있지만 기사까지 났었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된 거는 맞다고 한다.
5. 마무리 하며...
대한민국의 전무후무한 선수가 아닐까 싶다. 이런 선수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유상철의 플레이를 너무나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한국 축구를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스포츠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이제 그를 영상으로만 만나야 한다는 게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R.I.P.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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