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영은 지난 7일 방송된 KBS 2TV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증조할아버지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로 이어지는 4대째 의료계 가문임을 밝혔습니다. 방송에서 그녀는 "증조부께서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신 뒤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며 자부심을 드러냈고, 방송 직후 네티즌 수사대는 이 인물이 구한말 의사 안상호임을 밝혀냈습니다.
실제 안상호는 1902년 일본 도쿄자혜의원의학교를 졸업하고 의술개업시험에 합격한 뒤 1907년 귀국해 의원을 운영했던 당대 최고의 엘리트 의료인이었습니다. 이후 궁중 촉탁의 및 전의로 발탁되어 황실의 건강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으며, 그의 의학적 성취 자체는 당대 기록에 뚜렷하게 남아있습니다.
특히 하영은 이번 방송뿐만 아니라 지난해 1월 진행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가문의 내력에 대해 언급한 바 있습니다. 당시 그녀는 "자세한 이야기를 많이 듣지는 못했다"면서도 의료계 집안 출신이라는 점에 대해 "너무 감사한 일이다. 당연히 자랑스럽다"고 밝힌 팩트가 재조명되며 대중의 관심은 안상호라는 인물에 더욱 집중되었습니다.
안상호의 이름이 역사에서 민감하게 다뤄지는 첫 번째 지점은 고종 황제의 죽음과 얽혀있습니다. 1919년 고종이 덕수궁 함녕전에서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쓰러졌을 당시, 급히 진료를 시도했으나 끝내 구하지 못한 당직 의사 중 한 명이 바로 안상호였습니다.
당시 현장에는 안상호를 비롯해 일본인 의사가 함께 배석하여 진료를 진행했습니다. 고종이 사망한 직후부터 민간과 독립운동 진영을 중심으로 그가 '일본인의 사주를 받고 고종에게 독약을 올렸다'는 이른바 독살설이 파다하게 퍼졌고, 안상호는 이 혐의로 심각한 의혹에 휘말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독살설과 관련해서는 학계의 입장이 신중합니다. 뚜렷한 물증이나 증거가 없기 때문에 역사 학계에서는 그가 독살에 가담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황상익 전 서울대 교수 역시 안상호의 당시 행적을 두고 "그를 즉각적으로 친일파로 단정하기는 어려우며, 전체적인 생애와 활동에 대한 추가적이고 정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습니다.
독살설이 학계 미공인 상태라면, 안상호의 친일 행적 의혹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결정적 물증은 1916년 11월 결성된 '대정실업친목회(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수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이 단체를 일제 무단통치기 조선인 유력자들을 포섭해 일제의 불법 통치에 순응시키고 내선융화를 선전하기 위해 설립된 대표적 친일 단체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완용과 송병준이 주도했습니다.
이준식 전 독립기념관장(역사정의실천연대 정책위원장)은 10일 인터뷰를 통해 "대정친목회에 안상호가 평의원으로 참여했다면 친일행위를 한 것이 맞다"고 단언했습니다. 그는 안상호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사전에 등재돼 있지 않다고 해서 친일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전 미수록이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역사 학계의 논문 기록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학술지 '한국민족운동사연구'에 실린 논문 '최초의 근대 기업의 안상호의 생애와 활동'에서도 그가 대정친목회의 평의원이 된 역사적 사실이 명확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준식 전 관장은 이 단체가 나아가 1920년 조선일보를 창간한 주체이기도 하다는 점을 덧붙여 그 조직의 정치적 파급력을 설명했습니다.

안상호의 일제 강점기 생활상은 1918년 12월 10일 자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사를 통해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해당 기사는 일본인 아내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성공한 의사 안상호를 일제의 핵심 친일 논리인 '일선동화(一鮮同化, 일본과 조선의 통합)의 모범 가정'으로 대대적으로 홍보했습니다.
해당 인터뷰에서 안상호 본인은 "나도 지금 조선 옷은 한 번도 입지 아니하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 자녀들이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하고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 조선 사람과 그리 상종하는 일이 없으므로 불편한 것은 없다"며 완벽히 일본인화 된 점을 자랑스럽게 늘어놨습니다. 일본인 부인 이소코 역시 "11년 동안 조선에 있었어도 조선말은 한 마디도 못한다. 우리 식구들은 딴 세상에 사는 셈"이라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우리역사넷'은 이러한 안상호의 사례를 국가 사료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이 기사를 통해 안상호 가족이 당시 조선인 사회와 철저히 담을 쌓고 일본인 공동체와 주로 교류하며 일본식 생활을 완벽하게 유지한 팩트를 역사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논란이 거세지자 하영의 소속사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10일 "현재 거론되고 있는 증조부가 안상호인 것은 맞지만 친일 행적과 관련해 제기되고 있는 루머는 사실무근"이라고 공식 입장을 냈습니다. 이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자세한 내용을 정리해 빠른 시일 내에 입장을 다시 발표할 예정"이라고 진화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언론 보도 사료와 대정친목회 평의원 이력 등 역사적 사실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상황에서, 어떠한 근거나 반박 없이 의혹 전체를 '사실무근'으로 일축한 소속사의 1차 대응은 옹색하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오히려 애매모호한 대처가 대중의 반발심만 자극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가 사료와 전문가 증언이 명백히 존재하는 가운데, 단순히 선을 긋는 대처만으로는 논란을 잠재우기 어려워 보입니다. 광복절을 불과 며칠 앞두고 대중의 정서가 극도로 예민해진 시점인 만큼, 소속사가 향후 발표할 '자세한 입장문'에 과거 기록들을 반박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팩트 소명이 담길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 구분 / 쟁점 | 주요 팩트 및 상세 내용 |
|---|---|
| 인물 관계 | 배우 하영(안하영)의 증조부 = 의사 안상호 (소속사 공식 인정) |
| 의사 및 전의 경력 | 1902년 도쿄자혜의원학교 졸업, 1907년 귀국 의원 개원, 고종 황제 진료 담당 |
| 고종 독살 연루설 | 1919년 고종 뇌출혈 사망 당시 당직 의사 (단, 독살 가담은 뚜렷한 증거 없어 학계 미공인) |
| 친일 단체 이력 | 1916년 이완용 주도 친일 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 수록 (논문 등 사료 명시) |
| 언론 사료 (매일신보) | 1918년 인터뷰에서 일본식 생활, 조선어 사용 금지 자랑 ('일선동화' 모범 사례) |
| 소속사 대응 | 비스터스엔터 "사실무근, 추후 상세 입장 발표" (사료 검증 없는 일축으로 비판 직면) |
| 배우 하영, 증조부 '친일 행적' 자필 사과 (0) | 2026.0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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