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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슬픈 외국어 - 무리카미 하루키 저

by monotake 2014. 3. 30.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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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슬픈 외국어
국내도서
저자 : 무라카미 하루키(Haruki Murakami) / 김진욱역
출판 : 문학사상사 201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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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세이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쓴 자전적 에세이이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느낀 감정을 솔직히 적었다. 그러면서 미국과 일본의 문화차이나 사람 관계의 차이점을 설명한다. 몰론 굉장히 주관적인 입장이지만 말이다. 그러면서도 독자들은 이 차이점을 느끼고 생각하고 다시 우리나라 문화와의 차이점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나라라면 어떨까? 우리나라라면 과연 어떤 생각이었을까?

 

문화뿐만 아니라 언어에 대한 차이도 느낀 그대로 설명한다. 그래서 책 제목이 이윽고 슬픈 외국어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발소에 관한 부분이다. 하루키는 한달에 한번 머리카락를 자르는데 일본에 있을때는 도쿄에 단골집을 가면 됐지만 미국에서는 맘에 드는 이발소를 찾기 애먹었다. 십분에서 십오분이면 기계로 머리를 짤라버리고 머리조차 감겨 주지 않고 몸전체에 머리카락 투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다가 괜찮은 유니섹스 미용실을 찾았지만 무심코 직원이 건넨 면봉 두개에 마음이 떠난다. 면봉의 의미는 귀청소하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 이발소나 미용실을 이용하면서 특별히 불편한 느낌이나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다시 한번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해보지만 미국이나 일본과는 큰 차이는 없겠지만 적어도 면봉은 주지 않는다.

 

 

하루키는 달리기 매니아이다.

 

 

하루키는 달리기 매니아로 미국에서도 역시 달리기 대회에 참가한다. 일본과 미국의 차이를 설명한다. 일본은 참가 한달전에 신청을 해야 하지만 미국은 그날 당일 신청을 해도 참가가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참가자 명단을 책자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고위 공무원들의 실적과 생색내기위해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스타트 3시간전에 참가하라고 한다. 대회 개회식에 참가하라는 것이다. 일본은 형식을 중요시한다. 과연 달리기위해 대회를 참가하는건지 고위공무원의 실적을 위해 참가하는건지 의문이 생긴다.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적어본다.

#머리말

이 책의 글은 지금 다시 읽으면 스스로도 '음, 꽤 직접적이군'하고 감탄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 당시 내 기분이 정직하게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프린스턴 시절은 내 인생 중에서 좀 특별한 색을 가진 시기일지도 모릅니다. 그 시기는 그 후 여러 곳에서, 내 일과 인생의 전개를 적지 않게 변화시켜준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마도 좋은 방향으로. 

그런 의미에서는, 이 시기의 자신의 심정과 주위에서 일어난 일 (아무래도 상관없을 일도 많이 있지만)을 이런 형태로 착실히 기록해두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분의 흐름 같은 것은 시간이 지나버리면 꽤 자세히는 생각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변화라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사소한 것이 쌓인 것에서 의외로 뚜렷하게 알아차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우메보시 도시락 반입 금지 중

하지만 그곳에는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 사람의 눈길을 끌 만한 호화 주택도 없는 대신, 눈길을 끌 만큼 지저분한 집도 없다. 마치 사람의 눈길을 끌지 안ㄶ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집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이다. 만약 보스턴에서 정확하게 26마일 떨어져 있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보스턴 마라톤의 출발 지점으로 선택되지 않았더라면, 이 홉킨턴 마을은 아마도 이곳 주민 외에는 그 누구의 주의도 끌지 못한 채 - 어쩌면 그것이 원래 이 마을의 바람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잠자듯이 조용히 존속학고 있었을 것이다.

# 대학가 스노비즘의 흥망 중

결국 좋은 의미에서건 나쁜 의미에서건, 일본에서는 지적 계급성이라는 것이 거의 해체돼버렸다. 전후 얼마 동안은 그런 것도 어느정도는 시스템으로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공산주의나 음악다방이나 순수문학 같은 것의 소멸과 호응하듯이 어느 틈엔가 슬며시 소리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지적 계급성이 사라져버리면 계급적 스노비즘 같은 것의 존재 의의도 사라져버린다. 거기에 남아 있는 것이라하면, 계급적 스노비즘의 잔존 기억을 대중에게 돌려 '베를린 장벽의 파편'처럼 상품으로 조금씩 팔아치우고 있는 거대 유통.정보 자본뿐이다...그렇게 생각하면 미국 대학의 지적 스노비즘 같은 건 그야말로 계급 사회 최후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아무리 엘리트 의식이라고 불려도, 고립된 세계라고 들어도 "이렇게 속세와는 동떨어진 사회가 이 세상 어딘가에 하나쯤은 남아 있어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그것이 불평등성과 계급성 위에 성립하고 있는 특수 세계라는 걸 알고 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 미국판 단카이 세대

그들은 어디까지나 취미로 농장에 살고 있는 것뿐이다.

# 누가 재즈를 죽였는가

그런 여러가지 기억, 감촉, 공기, 모순, 즐거움, 자기혐오, 수수께끼 같은 것들이 뒤죽박죽 섞여서 재즈라는 단어의 울림 속에 하나로 뭉쳐 있는 것이다. 

# 버클리에서 돌아오는 길

일본어로 소설을 쓰면서 다시 한 번 일본어를 상대화하는 것, 일본인이면서 다시 한 번 일본인의 성격을 상대화 하는 것- 나는 그것이 앞으로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어학 공부에 할당하는 시간이 아까워진 데 있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시간은 얼마든지 있고, 미지의 언어를 습득하다는 열정 같은 것도 있다. 거기에는 지적 호기심도 있고 무엇인가를 정복해야겠다는 흥분도 있다. 새로운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기대도 있다. 일종의 지적 게임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마흔이 넘고 앞으로 유효한 시간이 나를 위해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가에 대해 슬슬 신경이 쓰이게 되자, 스페인어나 터키어의 동사 활용을 닥치는 대로 외우는 것보다는 내 자신에게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작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것에 신경 쓰기 시작하자 어학 공부라는 것을 좀처럼 할 수가 없다. 아득바득 노력하지 않아도 마치 공기를 들이마시듯 자연스럽게 조금씩 어학을 익힐 수 있는 천재라면 몰라도 (이런 사람은 내 주위에 실제 몇 명인가있다), 나처럼 고생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몸에 익히지 못하는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꽤나 괴로워진다. 대개 몇 개 국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해도 나라는 인간이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건 어차피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게 뭐든지 다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우선순위라고 말한 것은 바로 그런 의미다.

1)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먼저 자신이 확실하게 파악할 것. 그리고 그 포인트를 되도록 빠른 기회에 우선 짧은 말로 명확하게 할 것.

2) 자기가 제대로 알고 있는 쉬운 단어로 말할 것. 어려운 단어, 멋진 말, 의미 있는 듯한 말은 불필요하다.

3) 중요한 부분은 되도록 반복해서 (바꿔 말하라) 말할 것. 천천히 말할 것. 가능하면간단한 비유를 넣어라.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점에 유의한다면 그다지 말이 유창하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을 상대방에게 비교적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그 자체가 '문장 쓰는 법'도 되는구나.

#운동화를 신고 이발소로 가자

나는 일 년에 거의 320일은 스니커즈를 신고 지내고 가끔 구두를 신거나 하면 어쩐지 신분을 사칭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아무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완성된 헤어스타일은 엉망진창이었다. 거울을 보니 도저히 내 얼굴처럼 보이지 않았다. 원래 그렇게 칭찬받았던 얼굴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심하게 할 건 없지 않나 싶었다. 이런 얼굴을 한 녀석과 어떤 사정으로 마주 앉아 밥을 먹게 되었다고 하면 분명 뭘 먹어도 밥맛이 없을 것 같은, 그런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게 진짜 내 얼굴인 것이다. 

#롤 캐비지를 멀리 떠나보내고

어느 봄날 오후, 진구 야구장으로 야쿠르트 대 히로시마 팀의 경기를 보러 갔던 것. 외야석에 누워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힐튼이 2루타를 쳤을 때 갑자기 "그래, 소설을 쓰자"하고 생각했던 것. 그래서 내가 소설을 쓰게 된 것을...

"내게 필요했던 것은 자신이라는 존재를 확립하기 위한 시간과 경험이었던 거야. 그것은 특별하고 유별난 경험일 필요는 없어. 그저 아주 평범한 경험이어도 상관없지. 하지만 그건 자기 몸에 충분히 배어드는 경험이어야만 해. 나는 학생 때 뭔가를 쓰고 싶었지만 무엇을 쓰면 좋을지 몰랐어. 뭘 쓰면 좋을지를 발견하기 위해 나에게는 칠 년이라는 세월과 힘든 일이 필요했던 거겠지, 아마도." 그런 여러가지 일이 딱하고 제대로 결합하는 계시적인 순간이 언젠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 

#히에라르키 풍경

모처럼 일본을 떠나 외국에 있으니까 적어도 그 일 년 정도는 일본적인 궤도에서 벗어나, 그저 한 사람의 순수한 인간으로서 모든 사람들과 마음 편하게 사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나 같은 사람은 생각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자아나 아이덴티티나 세계솬이나 호흡기관이나 소화기관 속에는 '1차 공통 시험' '00성''00과장대리'라는 요소가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박혀 있어서, 새롭게 뭔가를 받아들이거나 다른 사람과 접촉할 때 그런 까다롭고 복잡한 필터를 일단 통과시키지 않으면 치명적인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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